심은경, 日 영화계도 평정
한국 시상식에 상처받기도
‘도전하는 삶’ 이어나가

오늘은 제가 최근 응원하게 된 배우 심은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아마 많은 분들이 심은경 하면 드라마 ‘대장금’ 아역이나, 영화 ‘써니’의 임나미, 혹은 ‘수상한 그녀’에서 할머니의 영혼이 깃든 스무 살 손녀로 기억하실 텐데요.
그녀가 단지 ‘연기 잘하는 아역 출신’으로 남지 않고,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왔는지… 알면 알수록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써니’로 730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바로 그 시기, 심은경은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지금?’이라 의아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이 아니면 10대 심은경의 삶이 없겠다 싶었어요. 학창 시절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뉴욕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보통 전성기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하잖아요.
근데 심은경은 자신의 ‘삶’과 ‘균형’을 더 우선에 뒀어요. 뉴욕에서 클래식과 재즈를 듣고, 재즈 바에 드나들며 배우가 아닌 ‘사람 심은경’으로서 살아본 시간이었다고 해요.

이 시기, 안타까운 일이 하나 있었어요.
심은경은 써니로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시상식에 불참한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이름이 삭제돼 버립니다.
심은경은 “미국에서 학업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불참의사를 밝혔는데, 후보에서 이름이 빠져서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죠.
이 사건은 당시 영화계 관행에 대한 비판을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심은경이 한국 활동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을 거예요.
2014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또 하나의 흥행작, ‘수상한 그녀’에 출연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 처음엔 고사했다고 해요.

“자신이 없었어요, 역할 자체가 연륜이 부족하다고 거절했는데 황동혁 감독님이 ‘은경 씨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며 기나긴 설득을 하셔서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 수상!
자신 없다고 생각했던 역할에서조차 최선을 다해 결국 최고가 되다니, 참 멋있지 않나요?
지난 2017년, 심은경은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일본으로 진출해 활동을 시작한 것이죠.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데 그녀는 무작정 덤비지 않았어요.
“한국어로 번역된 대본을 먼저 완전히 이해한 뒤 일본어 대본으로 넘어가요. 발음 하나하나 다 체크하고 선생님과 1:1 수업도 병행했어요.”
그렇게 6개월간 연습만 하며, 준비 또 준비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20년, 심은경은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일본 영화계의 최고 권위 있는 상이죠. 한국인 최초였습니다.

“제 이름이 ‘신문기자의 심은경 씨입니다’라고 불릴 때 너무 놀라고 경련이 오더라구요. 겨우 무대까지 걸어갔어요.”
무모해 보였던 심은경의 도전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습니다.
심은경의 여정을 쭉 들여다보면 단순한 연예인의 스토리가 아니라,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한 사람의 성장기 같아요.
누군가는 쉽게 ‘왜 굳이 일본에서?’라고 묻지만, 그녀의 삶은 ‘도전’ 그 자체였고, 그 선택엔 모두 이유가 있었어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져도 다시 해보는 사람’ 심은경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삶의 갈림길에서 망설이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심은경의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가끔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떠나는 것도 괜찮은 용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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