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카’의 미인, 전설이 되다
스크린과 드라마를 휩쓴 황금기
한 통의 전화로 다시 떠오른 이름

세련된 이목구비와 단아한 분위기,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얼굴.
배우 정윤희는 그 시절, 단순한 연예인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1970년대, 장미희·유지인과 함께 ‘트로이카 여배우’로 불리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든 정윤희는 ‘대한민국 미인 계보’의 시작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였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정윤희의 얼굴을 ‘1:1:0.9의 황금비율’이라 설명했고, 대중은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냐”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정윤희는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청춘극장’의 주연으로 발탁되며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동양방송 전속 탤런트로 ‘쇼쇼쇼’ MC까지 맡으며 폭넓은 인기를 얻었고, 드라마 ‘청실홍실’에서는 장미희와 함께 주연을 맡으며 당대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스크린에서도 활약은 두드러졌다.
1978년 영화 ‘나는 77번 아가씨’를 시작으로 ‘죽음보다 깊은 잠’, ‘도시의 사냥꾼’, ‘가을비 우산 속에’,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 다수의 흥행작을 내놓으며 ‘스크린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81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2년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2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 또한 인정받았다.
드라마 ‘세자매’의 발랄한 막내딸부터 ‘고백’ 속 강인한 여성상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캐릭터 소화력도 탁월했다.

광고계에서도 그녀의 존재감은 막강했다.
당대를 대표하는 미인의 얼굴은 수많은 브랜드의 모델로 소비되며 또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기의 절정이던 1984년, 정윤희는 공식 발표 없이 돌연 은퇴를 선택했다.
재벌 사업가 조규영 회장과의 결혼 이후, 조용히 무대를 떠난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최근 배우 노주현의 유튜브를 통해 정윤희와의 전화 통화가 공개되며 오랜만에 근황이 전해졌다.
짧은 인사 한마디에도 대중은 뭉클해했고, 정윤희를 향한 관심은 다시 한 번 뜨겁게 타올랐다.

은퇴 이후, 정윤희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2001년 막내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남편의 사업 실패, 압구정 아파트의 경매 소식까지.
한때 ‘스타’로 불리던 과거는 잊혀졌지만, 여전히 대중은 ‘정윤희’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미모로 시작해 연기력으로 완성된 배우.
정윤희는 단순한 외모를 넘어 시대를 대표한 ‘존재감’ 그 자체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정윤희는 그렇게 찬란하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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