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웃음 장인, 지금은 식당 사장님
27년째 가족 그리워한 기러기 아빠의 삶
그만의 방식으로 버티는 정명재

1990년대, ‘네로 25시’에서 엉뚱한 중국어와 술 취한 사람 연기, 그림 개그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개그맨 정명재.
한 시대를 웃음으로 채웠던 정명재의 코믹한 모습은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선명하다.

그러나 웃음 이면에는 길고 고된 외로움의 시간이 있었다.
1995년, 자녀 교육을 위해 아내와 두 자녀를 미국으로 떠나보낸 후 시작된 ‘기러기 아빠’의 삶은 어느덧 27년을 넘겼다.

정명재는 “결혼한 지 10년 만에 떠났죠. 그땐 조금만 참으면 가족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방송가에 세대교체가 일어나며 활동 무대가 줄었고, 외환위기 여파로 운영하던 회사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정명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 홀로 남아 식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지인의 도움으로 시작한 작은 식당은 어느새 정명재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정명재는 손님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직원들과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식당 인근에는 정명재만의 공간도 있다.
소박한 작업실에서 정명재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마음을 다잡는다.

정명재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전시회에도 출품한 적 있을 만큼 정성을 들인 작품이다.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던 과제물, 손편지, 사진은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목련나무가 피던 마당, 아이들과 걷던 골목길은 지금도 정명재의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정명재는 그 추억을 종이에 그리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정명재는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 있는 아이들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한국에 있어도, 결국은 다 떠나요. 결혼하면 또 멀어지죠. 그거나 이거나, 장소만 다를 뿐 다 똑같아요. 기대는 이제 내려놨어요”라고 말하며 정명재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명재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다.
손님에게 유쾌한 멘트를 건네고, 15년째 지역 봉사활동을 이어오며 주변을 따뜻하게 만든다.
혼밥의 외로움이 싫어 시작한 식당은 이제 정명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정명재가 직접 쓴 시처럼, 정명재는 비록 한쪽 날개를 다쳤어도 결코 하늘을 포기하지 않는다.
웃음을 주던 사람의 또 다른 얼굴, 정명재는 지금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예술로 녹이며 자신만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정명재가 언젠가 다시 온 가족과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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