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해 시작된 음악
히트 메이커의 화려한 명곡들
성공 뒤에 숨겨진 생존의 그림자

한국 가요계의 황금기를 빛낸 작곡가이자 여러 예능에서 활약한 방송인 주영훈.
터보, 엄정화, 코요태의 수많은 히트곡 뒤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공의 무대 뒤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고통과 절박한 시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주영훈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어머니가 버지니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며 가정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결벽증이 심했던 어머니가 하루 종일 변기를 뚫고 청소를 하다 집에 돌아와 몇 시간을 씻어내던 모습은 어린 주영훈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는 그때 마음속으로 “내가 꼭 성공해서, 엄마를 청소일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의 음악 인생은 바로 그 다짐에서 시작됐습니다.
‘배반의 장미’, ‘Poison’, ‘Festival’, ‘나 어릴 적 꿈’, ‘사랑스러워’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명곡들을 탄생시키며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히트곡 메이커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그는 매달 어머니께 생활비를 송금했고, 약속대로 어머니는 힘든 일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전성기 시절, 방송국 앞에서 조폭에게 납치돼 “댄스곡 두 곡, 발라드 두 곡을 써내라”는 협박을 받은 일화는 충격을 안겼습니다.
좋은 곡을 내주기도 아깝고, 나쁜 곡을 주자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듣기엔 괜찮지만 크게 성공하지 않을 곡”을 쥐어주며 버텨야 했습니다.
그조차도 웃으며 “그땐 약 파는 심정으로 곡을 설명했다. 살아야 하니까”라고 고백했지만, 그 속엔 치열했던 생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영훈은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서 수많은 명곡으로 살아 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만든 음악,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써 내려간 선율들.
화려함과 어려움이 공존했던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음악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주영훈, 그의 음악과 또 다른 이야기들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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