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 시선
집까지 팔아 뒷바라지한 시간
골반 골절→국립발레단→배우 전향

영국으로 유학 가 발레를 했지만 재벌가 손녀나 금수저는 아니라고 밝힌 여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배우 왕지원 이야기인데요. 사람들이 왕지원을 떠올릴 때, 이상하게도 발레보다 먼저 따라붙는 말이 하나 있죠. ‘로열패밀리’라는 이미지입니다. 실제로 아버지 왕정홍은 감사원 사무총장과 방위사업청장을 지낸 인물로 알려져 있고, 외할아버지는 프로스펙스로 유명한 국제그룹 창업주 고(故) 양정모 회장이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풍족하게 자라서 발레도 쉽게 하고, 성공도 쉽게 했겠지” 같은 시선이 따라오곤 했는데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이미지가 억울하다고 말해왔습니다. SBS 예능 ‘동상이몽’에 나와서도 “내가 그렇게 말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는 뉘앙스로 선을 그었죠. 기사만 보고 단정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했던 거고요. 특히 부모님이 자신의 발레를 뒷바라지하려고 살던 아파트까지 팔아 학비를 대줬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더 아쉽다고 털어놨습니다. ‘배경 덕에 당연히 굴러간 커리어’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죠.
왕지원은 5살 때 발레를 시작했고, 엘리트 코스로 쭉 달려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기관인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선화예술중학교에는 수석 입학했다고 해요. 선화예중 시절에는 세계 최고의 발레학교로 알려진 영국 로열발레스쿨로 유학을 떠났고, 당시 유일한 동양인 학생이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그렇게 발레 하나로 달리던 시절, 몸이 먼저 경고를 보냈습니다. 유학 중이던 때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골반이 두 갈래로 부러진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다고 하죠.

그래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고, 콩쿠르에서도 성과를 냈습니다. 2007년 전국 신인 무용 콩쿠르에서 특상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죠. 이후 2009년에는 국립발레단 단원으로도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몸이 계속 버텨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잦은 부상이 이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상태였다고 해요. 휠체어를 탈 정도의 큰 부상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발레리나로서의 삶을 계속 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뜻밖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 데뷔 제안을 받았고, 모델 활동을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배우로 방향을 틀게 됐다고 하죠. 결국 부상이 악화되면서 국립발레단을 그만둔 뒤,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배경에 시선을 두지만 그 길에는 왕지원의 땀과 노력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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