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줄이면 예뻐질까? 술꾼 여기자의 절주 체험기

기사입력 2017-11-14 15: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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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린 뉴스에이드 편집장

그날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알식 오프닝 ㅋㅋ)


예쁘지 않아도, 섹시하지 않아도, 어려보인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내가 절친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것이다.


"혜린아, 너 이제 네 나이로 보여."


격분한 나는 먹고 있던 양꼬치로 친구를 찌를 뻔했다. 결국 소주로 4차까지 내달리고 친구와 서로 자기가 더 어려보인다고 소리 높여 싸우다 유치원생마냥 "절교!"를 외치고 각자 반대방향으로 헤어졌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아파트 단지 가로수 뿌리에 잔뜩 토해주고 다짐했다.


"이제 만취는 안해야지."


<사진> 친구 배에 꽂힐 뻔한 양꼬치


그 때문이었을 거다.


마침 회사로 제안이 들어왔던 한달 절주 프로젝트에 별 생각 없이 지원한 것은.


몰랐다. 이것이 나의 신체적, 심리적, 총체적 난국을 민낯으로 떡하니 마주할 고통의 시작일 줄은.



10월 25일 : 인지의 시작


덜컥 자원은 했는데, 과연 내가 적합한 지원자일까 싶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한잔만! 하며 삼겹살에 소주를 조금만 마시기로 했다. 매우 오랜만에 만난 매니저가 말했다.


"오랜만 아닌데? 자주 봤는데요?"

"언제요."

"술집에서 몇번을 봤는데. 그때 홍대에서. 또 강남에서."

"아닌데."

"아. 꽐라긴 하더라고요."


"폐인이 돼야 알코올 중독인 게 아니에요. 자꾸 술이 당기고, 점차 많은 양을 먹어야 만족이 되고, 내가 그만 먹어야지 했을 때 멈출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면 이미 문제가 생긴 겁니다." (오홍석 성남시중독관리 통합지원센터 센터장, 이하 동일)



10월 27일 : 절주 효과를 기대하며


옛날엔 남자들이 내 뒷모습만 보고 막 쫓아오고 그랬다. (앞모습을 보고 난 후의 리액션은 비밀이다)


한달 절주 후엔 그 몸매 되찾을 수 있겠지? 일단 기록을 위해 오랜만에 체중을 재고 허리둘레도 재보기로 한다. 예전엔 52kg 쯤 됐던 거 같은데? 그 사이 맘고생을 많이 해서 50kg쯤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허리는 재본 적도 없다. 걸그룹 멤버들이 보통 23, 24인치 그러니까 난 한 25인치 될까? (겸손 ㅋㅋ)


<사진> 숨 안쉬고 잰 건데..


70센치? 그럼 몇인치지?

헉!!! 28...............


후배가 챙겨준 피부 수분 측정기도 눈 밑에 대본다. 수분, 피부결이 마이너스 기록 중이시다.


이쯤되면 체중계에 올라가기 겁난다. 공중화장실 변기 뚜껑 열 때보다 더 무섭다.


<사진> 엄마, 이거 고장났어요?



10월 29일 : 혼술은 괜찮나?


술을 안마시려면, 일단 술자리에 최대한 안가는 게 좋다. 오랜만에 금, 토, 일 내내 집에 있었다. 방 정리도 하고, 책도 보고, 영화도 봤다. 정말 알차다!


는 개뿔. 마침 본 영화가 외로운 내 마음을 마구 헤집어놓는다. 외롭다. 외롭다. 평생 이렇게 방 청소나 하며 혼자 살면 어떡하나!


맥주가 필요하다. 이건 절대 맥주가 좋아서가 아니다. 외로워서다.


얼른 떨어져, 이것들아


"혼술은 음주습관을 악화시킬 수 있어요.


맥주 한 캔이 두 캔이 되고, 두 캔이 소주 1병이 되죠. 음주량을 꾸준히 맥주 한 캔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괜찮지만, 아주 조금씩 술이 더 필요하다, 하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10월 31일 : 6일만의 무너짐


술자리에 안가니 삶이 너무 무료하게 느껴진다.


친구들을 졸라 억지로 술자리를 만들었다. 처음엔 분명 다들 "오늘은 맥주 2잔만 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야, 너 왜 안마셔"를 시작으로, "넌 왜 남겨", "이번엔 다 비워라"의 퍼레이드. 결국 맥주는 소주로 바뀌고, 2병으로 늘고.. 3병, 그리고 4병..?


그런데 휴대폰에 남아있는 인증샷은 왜 막걸리일까. 미스테리다.


<사진> 이건 누가 마셨니?


"술을 마시면 집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3차, 4차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죠.


후자인 분들은 체질상 술을 마실 때 다른 사람들보다 도파민이 많이 나와서 기분이 더 좋은 거예요. 그렇다고 그 분들이 몸도 더 튼튼한 건 아니거든요.


당장은 아니지만 10년 후, 20년 후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1월 1일 : 건강하면 더 마셔도 되지 않을까


술이 안깬다. 예전에는 술 마신 다음날도 쌩쌩했던 것 같은데, 확실히 힘들어졌다. 나, 건강은 괜찮은걸까?


동네 내과로 달려가 혈액검사를 해봤다. 결과는 너무 정상. 술, 더 마셔도 되겠는데?


<사진> 피 뽑자마자 무거운 가방 들면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휴대폰을 보니까 아, 전날의 추억... 이 사진은 언제 찍혔지? 내가 얘한테는 왜 전화를 했지? 이 카톡은 뭐야? 헉.


과음한 다음날 휴대폰을 열 때 그 공포. 술 때문에 맺게 됐던 이상한 인연과, 술 때문에 끊어졌던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리며 반성한다.


<사진> 제발 그 폰을 내려놔


"보통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각성중추부터 마비되면서 필름이 끊기기 전에, 잠이 들게 돼 있어요. 그런데 필름이 자꾸 끊긴다는 것은 각성중추가 알콜에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이 생겼다는 뜻이에요.


깨어있긴 한데,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면 평소 눌러뒀던 본성이 나옵니다. 그래서 비슷한 주사가 반복되죠. 이건 본인 힘으로 제어하거나 예방하기 어려워요. 10년 후 주사가 달라질 순 있지만, 1년 후 주사는 비슷할 거란 뜻이죠. 주사를 피하려면 술에 취하지 않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11월 6일 : 반성의 시간


오후 3시. 이태원 사무실을 벗어나 회의를 하기로 했다. 모두들 커피숍을 찾는데 나 혼자 "차돌 먹을래? 곱창꼬치 끝내주는 데도 있어!" 이런다.


"선배, 차돌이 아니라 술이 먹고 싶은 거잖아요."

"아니야."

"선배랑 술 마시는 거 정말 힘들어요!!"


대체 왜지?


"선배는 술에 대한 자세를 바꾸셔야 합니다, 진심!"



내 자세를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1. 술잔만 보면 비워야 할 것 같다.


2. 2차만 하고 보내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3. 맥주에도 소주를 타고, 와인에도 소주를 타고, 막걸리에도 소주를 탄다.


4. 내가 준 술을 남기는 사람은 왠지 날 안좋아하는 것 같다.

이게 뭐, 그렇게 심각한건가..?


<사진> 소주 9.5 + 맥주 0.5의 환상적인 조합을 자랑하던 이혜린표 색소주♡



11월 8일 : 여자인 게 서럽다


후배들의 등쌀에 상담센터를 찾았다.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내 음주습관 체크하기.



40점 만점에 31점 되시겠습니다!!


20점 이상이면 알코올 문제가 이미 시작됐다고? 아니다. 여자는 10점? 이건 남녀차별이다. 그 어떤 방식으로의 차별도 반대하는 선진시민인 나는 즉각 센터장님을 찾아가 따져물었다. 괜히 여자들 술 못먹게 하려고 이런 거죠?


<사진> 오홍석 센터장님 (좌),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위치한 수정구보건소


오홍석 센터장 (이하 오) : 술은 남녀가 공평하지 않아요. WHO가 발표한, 해가 되지 않는 음주량이 남자가 하루 4잔인데 여자가 하루 2잔이에요.


같은 양을 마셔도 여성의 몸이 더 많이 상하고, 뇌에서 중독 반응도 더 빨리 일어납니다.


이혜린 (이하 나) : 회식 자리에서, "저 2잔 다 마셨으니 그만 마실 게요." "여자니까 반만 마실게요." 그건 말이 안되거든요. 분합니다.(웃음)


오 :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나 : 그런데 술을 먹다보면 또 늘기도 하고 그렇지 않나요?


오 : 주량은 늘지 않아요. 노화가 진행되면 술은 더 약해져요. 누구나 그렇습니다. 20대 때 제일 잘 마시고, 30대, 40대가 될 수록 약해지죠. 그래서 세계적으로 20대들이 술을 제일 많이 마시다 점차 줄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웃음)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마셔요.


술이 는다고 느끼는 건 술에 대한 내성이 생긴 거예요. 뇌가 알코올에 익숙해져서 같은 양으로는 취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더 많은 양을 마시게 되고, 그만큼 몸이 상하는 거죠.


나 : 전 원래 술을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일을 하려면 술을 마셔야되는 때가 많아요. 정말이요!


오 : 스스로 잘 생각해보셔야 해요. 정말 내가 일 때문에만 술을 마시는 건가. 그럼 휴가중이거나 주말엔 마시지 않았을텐데요? 진짜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같은 일을 하는 분 중에 술을 안드시는 분이 정말 없어요?


나 : 아..


오 : 뇌는 점차 더 많은 알코올을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술이 꼭 필요하다"고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술을 원해서 음주를 합리화하는 자신의 뇌한테 속아서는 안됩니다.


손이 떨리고 그래야만 중독이 아니에요. 절주를 다짐하고도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 술을 계속 마시고 있다면, 술에 대한 갈망이 이미 자리 잡은 거예요.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하시면 안돼요. 술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일은 없어요.



11월 9일 : 이 세상에 나만 혼자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 맨정신에 헤어지는 나날들이 8일째 지속되고 있다.


너무 불안하다. 이 사회로부터 나만 고립될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다시는 날 찾지 않을 것 같다.


술을 안마시는 인간이라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매력 없는 사람이 된 거 같다. 한동안 내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팔할은 '술 잘 마시는 멋진 여자'였다. 사실은 '술 많이 마시는 진상 여자'였지만, 우리 업계에서 그건 곧 "일 잘하고 매력 있음"이라고 믿었다. 난 내 자아의 상당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느낌이다. 이건, 실연이다.


<사진> 행복했던 그 때


술을 조금만 먹겠다고 하니, 다들 칼같이 약속을 미루잔다. 술 안먹어도 좋으니 그냥 보자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 나보다 술이 더 중요했던 거다.


황량한 압구정 로데오 길을 걸으며 휴대폰만 만지작거린다. 여기 저기 술집에서 쏟아지는 웃음 소리들.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한 거 같다.


"금단현상은 보통 불면, 불안으로 나타나요. 뇌가 억제돼있던 게 풀리니까요. 정말 어려우면 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심리적인 금단증상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해요. 대인관계, 감정처리 방법을 다시 배워야할 수도 있습니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예요. 배우고 훈련하면 됩니다."



11월 11일 : 목표 재설정


원래 목표는 상큼하게 영화만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친구와 오붓하게 노니까 기분도 너무 좋은 것이다. 친구야. 너도 좋지? 그럼 너만 한잔 해. 난 구경만 할게.


<사진> 친구 따위 쳐다보지 않는다


결국 한잔을 하고 찜찜하게 돌아왔다. 도저히 안되겠다. 보다 더 구체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몸무게는 줄었나? 허리는? 피부는 좋아졌나?


<사진> 허리는 여전히 70센치, 몸무게는 비슷, 피부는 갑자기 기름 폭발!! 


허허.


피부는 수분크림을 바꾸는 등 다른 변수가 많았다. 몸무게도 유의미한 변화라고 보기 어렵다.


가장 충격적인 건 허리 둘레가 똑같다는 거다. 술을 줄이면, 배도 쏙 들어가야하는 거 아닌가? 2주간 딱 한번 만취하고, 늘 1차에서 칼같이 헤어졌는데 실망스럽다.


아직 변화가 나타나기엔 이른 건지도 모른다. 술 대신 안주를 더 열심히 먹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식사량은 유지하면서, 술만 더 줄여보기로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권장하는 절주 수칙도 외워뒀다! 2주 후에는 제대로 된 절주효과를 기대하면서, 으쌰!



-2주 후 2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본 기사는 보건복지부의 음주페해예방 캠페인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사진=이혜린 편집장, '러브비하인드' 스틸컷,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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