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에서 지키는 배우의 품격
전성기와 추락, 그리고 다시 선 자리
건강보다 큰 힘, 사람과 무대에 대한 그리움

한때 영화와 드라마 400여 편에 출연하며 “국민 감초”로 불렸던 배우 남포동.
감칠맛 나는 사투리와 표정, 그리고 타이밍으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뽐냈던 남포동은 1980~90년대를 풍미했다.

행사 한 번이면 차를 바꾸고, 6개월마다 새 차를 몰던 전성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연쇄 사기와 대규모 금융 사기에 휘말리며 전 재산을 잃었고, 결국 이혼까지 겪었다.

절망 속에 술로 버티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13년 전 막내동생에게 간 이식을 받았다.
두 딸도 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식의 배를 절개할 수 없다는 마음에 끝내 거절했다.
지금은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고, 호흡곤란이 잦아 산소통 없이는 100미터도 걷기 힘든 몸이 됐다.

남포동이 터를 잡은 곳은 경남의 오래된 온천마을에 자리한 낡은 모텔.
10년 넘게 혼자 지내지만 방 안 한쪽엔 배우 시절 사진이 빼곡하고, 수트와 백바지, 백구두, 중절모가 각 잡혀 걸려 있다.
만날 사람이 없어도 매일 면도하고 콧수염을 다듬으며, 현역 시절 쓰던 분장 도구로 간단히 단장한다.

가까운 시장만 가도 정장에 중절모, 포켓치프와 스카프까지 챙기는 건 “배우로서의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는 혼자 식사조차 어려워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는 남포동은, 건강이 악화됐을 때 딸이 요양병원으로 모신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남포동은 “폐 끼치기 싫다”며 늘 모텔로 돌아왔다.

병원에도 자주 들러 약을 처방받고 영양제 주사를 맞고 있지만, 예전만큼 건강이 따라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남포동을 붙잡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한때 절망해 바다로 향하던 남포동을 붙잡아 살린 황경수 감독, 그리고 씨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여전히 남포동의 삶에 남아 있다.
씨름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이 남은 버킷리스트다.

무대에 대한 그리움도 여전하다.
소극장 공연을 가장 먼저 입장해 진지하게 관람하며, 아주 잠깐이라도 다시 서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올해 초, 삶을 놓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다시 모텔로 돌아와 “살아야 한다.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남포동의 앞으로의 삶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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